성보 2009. 11. 11. 10:09

 

 * 5분독서(미술) -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정림사지 5층석탑 이야기>

 

미륵사지석탑과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 말기

무왕(600~640년)때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백제의 삼십대 왕인 무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서동요'의 주인공이지요.

당시 신라의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는 아름다운 모습과 마음씨로 백제 땅에까지 소문이 났었습니다.

 

산골에서 마를 내다 팔던 총각, 서동은 선화공주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한 나라의 공주의 몸으로 귀하디 귀한 선화공주의 처지를 비교해 볼 때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사이였지만 서동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서동은 어머님께 인사를 하고는 신라땅으로 떠났습니다. "어머님! 신라의 선화공주를 꼭 어머님의 며느리로 데려 올테니 저만 믿고 기다려 주십시요." 말이나 될 소리인가 기가 막히면서도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이루고야마는 서동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님은 허락해 주셨습니다.

신라에 도착한 서동은 마를 공짜로 주면서 아이들을 불러모았습니다. 맛난 마를 거저 주는 서동을 따라 다니며 아이들은 별 생각 없이 서동이 시키는 대로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노래 가사도 무척 재미있었지요.

 이 노래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서동요'입니다.

 

            " 다람쥐들이 보았다네    

              착하고 예쁜 선화공주님     

              밤마다 몰래 성에서 나와   

              감나무 숲 속,

              은은한 달빛아래    

              서동님과 손잡는 걸   

              다람쥐가 보았네   

              둘이서 부르는    

              정다운 노랫소리

              굴뚝새도 들었네 "

 

궁궐까지 노래는 알려졌습니다.

임금은 노발대발하며 '서동요'를 더 이상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시켰고 선화공주를 불렀습니다.

    "도대체 신라의 공주 된 몸으로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이냐.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영문도 모르고 야단만 맞은 선화공주는 여러 날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선화공주에 대한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지경으로 발전했습니다. 결국 선화공주는 궁궐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신라땅에서는 더 이상 걷지 못하고 두려움 반, 피곤함 반으로 길게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흑흑!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지난 세월을 돌이킬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무리 해괴한 소문이지만 사실 확인도 없이 쫓아낸 아버지도, 가족들도 모두 원망스러웠고 무엇보다 그 노래 속의 서동이라는 사람이 가장 미웠습니다.

바로 그때, 풀 스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스르륵, 사-삭." 그렇지 않아도 무서웠던 터에 숨이 멎을 듯 놀랜 선화공주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도망도 가지 못하고 꼼짝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까부터 멀찌감치에서 선화공주의 뒤를 따라오던 서동이었습니다.

 

 "선화공주님, 제가 바로 서동입니다. 화가 나시겠지만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주십시요."

 

그때부터 어슴푸레 날이 밝을 무렵까지 선화공주와 서동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동을 미워하던 선화공주는 그 동안의 일을 차분히 이야기하는 서동의 자신 있는 모습과 자기를 만나기 위해 머나 먼 신라까지 찾아온 대담함과 적극적인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를 사랑하는 서동의 마음을 알고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후 백제로 건너 간 서동과 선화공주는 어머님을 모시고 잘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서동은 백제의 무왕이 되었습니다.

무왕부부는 착실한 불교신자였고, 비록 백제 말기였으나 백성들의 믿음을 얻어 찬란한 백제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미륵사와 정림사 등 절도 많이 지었고 불교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미륵사를 짓고 몇 년이 지나 무왕은 사비성에 새로 정림사라는 절을 짓도록 했습니다.

사비성은 백제의 서울로 지금의 부여의 옛이름입니다.

그때 돌탑을 만들 석공을 전국에서 불러 모았습니다. 정림사탑을 만들 석공을 뽑는 날, 사비성 안에는 등짐을 하나씩 맨 석공들이 수십 명씩 모여들었습니다. 미리 전국에 방을 붙여 탑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지 계획서를 가지고 오도록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한 명씩 석공들을 만나 보면서 맨 마지막으로 다섯 명을 뽑았습니다.

모두 자기 고을에서 내노라 하는 이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그 지방에서 알아주는 탑이나 조각품들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은 아무도 이름을 몰랐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옷도 남루했지만 눈빛 하나만큼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시험 보는 날, 그 석공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계획서를 보던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 석공에게 물었습니다.

 

 "이보게, 이건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탑인데, 자넨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는가?"

 

"제가 비록 무식하고 이름은 없으나 돌 다루는 법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제 아비 또한 이름 없는 석공이었으나 우리 고을의 돌로 만든 것. 대부분은 제 아비와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 백제땅에 유명한 탑도 많고 사람도 많았지만 저는 새롭고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는 그런 불탑을 만들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높은 뜻이 탑을 통해서 만백성에게 전해지도록 넋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른 어떤 석공보다도 의지가 강했고 기발했기 때문에 그 석공은 드디어 정림사의 탑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없는 석공 나부랭이를 뽑다니 정말 제정신들이야?"

하고 비난하며 우습게 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석공에 대한 믿음이 생겨 났습니다. 우선 돌 하나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사비성에서 백리나 떨어진 곳에서 질 좋은 화강암을 날라 오게 했으며 일을 할 때에는 몇날 며칠동안 말 한마디하지 않았습니다.

 

" 땅! 땅! 땡강! 땡강! "

 

망치소리와 돌조각 흩어지는 소리만이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줄 뿐입니다.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매일 똑같은 그 모습이 지루하게 생각됐지만 석공의 마음 속은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았습니다.

 

'미륵사 돌탑과는 분명히 달라야 해. 튼튼하면서도 아름답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언제나 같은 느낌이어야 해.

복잡하고 지저분한 장식은 없애야 해. 보아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야 해.

 

' 탑의 지붕은 얇으면서도 처마끝이 살짝 들리게끔 조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탑의 몸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야 했고 네 귀퉁이를 조각하다 보면 깨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밤이면 자신의 못남을 탓하며 뜬 눈으로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여러 달이 흘러 결국 탑은 완성되었습니다.

정림사 오층석탑을 구경하러 백제땅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탑돌이도 할 겸해서요. 탑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처음으로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 바람에 풍경소리가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의 술렁거림 속으로 이내 묻혀 버렸습니다.

 

 "야아, 이건 정말 대단한데?    마치 도솔천에 있을 것만 같은 탑이야!"   

 도솔천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극락을 말합니다.

 

"도대체 어느 유명한 사람이 만들었대요?"

"우아하면서도 힘이 있어요. 나무아미타불."

 

어느 새 사람들은 모두 탑 주위를 돌기 시작합니다.

성공입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뛰어넘어 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부처님이 한 분씩 들어 오셨습니다. 금당 앞이 사람들로 북적거릴 때, 탑을 만든 석공은 요사채에서 봇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금당은 부처님을 모신 절의 중심건물이고 요사채는 스님들이 생활하시는 곳입니다. 주지스님께서 사람들에게 소개시키려고 석공을 찾았을 무렵, 이미 그 석공은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없었습니다. 그후 사비성에서 그 석공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이름도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아마도 백제땅 어느 곳인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망치질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주면서 말이지요. 여러 분들도 여행을 하면서 절을 찾을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 탑 안내문에 씌여져 있는 글만 휙 보고 지나치지 말고 그 탑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 꼭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내가 탑돌이를 한다면 어떤 소원을 빌 것인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보세요.

아! 그럴 것 없이 직접 탑을 돌아보면 되겠군요.

그리고 인화여고 재학시절 미술시간을 떠올리면 더욱 좋겠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