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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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우리는 그를 루브르 박물관 최고의 작품 <모나리자>를 그린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이자 천재로서 해부학, 발명학, 비행학, 역학, 수학, 천문 등 여러 분야에 놀라운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생 한 켠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은 그 그림자의 끝을 쫓고 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귀족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고, 그는 사생아였다.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레오나르도는 어머니의 사랑도, 가족과 친척들의 따뜻한 정도 느끼지 못한 채 자라야 했다. 스승을 절망시킨 천재적 예술감각 베록키오는 당시 예술의 도시 피렌체 최고의 조각가였으며, 그의 공방에서 제작된 많은 조각들이 피렌체 곳곳에 배치되었다. 현재 피렌체에 있는 바르젤로 미술관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전시실은 없지만, 베록키오의 전시실은 있어서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을 정도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책들이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나 레오나르도는 그 두 언어를 거의 몰랐다. 그는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창의적 정신으로 실험과 실습을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확인시켜 나갔다.
그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명하고, 무대 장치를 고안하여 새로운 연극을 보여주며 피렌체인들을 즐겁게 해주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마술사로 부르기도 했다.
“이뤄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가 한 말년의 이 고백은 그의 완벽주의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남긴 소수의 작품들 하나하나는 여느 화가가 자신의 평생을 바쳐도 그릴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훌륭한 그림들이다.
이 작품은 광학, 건축학, 원근법, 인체 구조, 색에 대한 다 빈치의 총체적 연구 결과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처음 이 그림이 공개되었을 때 당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화면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훗날 밀라노를 점령했던 프랑스의 루이 12세는 이 작품에 너무나 매료되어 식당 벽을 통째로 뜯어 프랑스로 가져 가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연 모나리자 미소의 끝은 어디로 향했을까.
최후의 만찬 - 최초의 원급법 사용, 황금분할이용
모나(기혼 여성) 리자(여자 이름) |